한빛비즈
집필서
절판
소로우, 현대인에게 삶의 본질을 묻다
“당신, 지금 그대로 행복합니까?”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이제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고, 비신체적‧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밀란 쿤데라, 『느림』 중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이른바 근대화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달려왔다. 속도로 모든 것을 판가름하는 체제의 효율성은 인간에게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일을 해낼 것을 요구했다. 숲 속을 거닐고 한낮의 햇살을 피해 울창한 나무 밑에서 낮잠을 청하며, 마음이 동하면 일감을 내려놓고 한적한 방앗간에서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과거의 여유로움은 이제 죄악으로 치부된다. 느린 사람은 그저 문명에게 ‘왕따’ 당하는 게으름뱅이일 뿐이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빨랐던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그 폐해를 양산하는 속도 또한 남달랐다. 달리거나 회전하는 사물에 올라타 있으면 그 사물의 움직임을 볼 수 없듯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문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젠 오히려 정신없이 헐떡이며 뛰고 있을 때 비로소 안심이 될 지경이다. 그저 세상의 속도에 길들여진 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느닷없이 누군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삶을 가장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 소로우
인간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시간은 오늘이고 현재다. 소로우는 ‘지금, 여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것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에서 일어나는 억압에 순응하지 않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에 나서는 일이다. 그는 노예적 삶에 굴복하지 않는, 존재 자체로 존중되는 삶을 실현하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장해물을 제거하는 실천에 몰두했다. 소로우는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그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에서 벗어나라 말한다.
데이비드 소로우는 전원 속에서의 검박한 생활을 담은 『월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소로우의 삶은 스스로 문명을 떠나 자연이 주는 단순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 요즘 말로 ‘킨포크 라이프’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원생활이나 초월주의는 소로우를 이해하는 단면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숲 속에서의 생활 자체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한 이유이다.
소로우가 문명 속에서 발견한 현상은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고,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노동에 온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무감각이었다. 그는 질주하는 문명 속의 인간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관조와 성찰의 삶을 회복하기 위한 실천적 저항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속도를 향한 구심력만 작용하는 회전판 위에서 스스로 뛰어내렸다. 책에는 미친 속도로 질주하는 문명에서 벗어나 인간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관찰하려 했던 그의 치열했던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전하는 고전 속의 길
미술, 역사, 철학 등 새로운 분야와 인문학의 접목을 통해 끊임없이 인문학의 대중화를 시도해 온 저자 박홍순은 『소로우처럼 살라』를 통해 특유의 인문학적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소로우뿐만 아니라 니어링 부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에드워드 윌슨 등 자연스럽고 가치 있는 삶을 고민해 온 많은 선각자들을 소개한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이었던 소로우의 외침은 그가 태어난 지 20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국가나 어떤 조직이 개인의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뼈아픈 자각이 늘어나면서, 자기만의 삶에 대한 사유로 회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주류에 밀린 대안적인 삶이 아니라, 이제는 삶의 주류로 불릴 만한 생활양식의 변화이다. 모두가 걸어가는 대로의 삶이 아니라 자기만의 오솔길에서 행복을 찾는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위안을 얻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