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도덕경
한빛비즈
집필서
절판
하루에 하나씩만 버려도 삶이 가벼워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무엇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스카프는 가장 사랑했던 옛 ‘남친’에게 선물 받은 거라 버릴 수 없고, 저 신발은 다시 유행이 돌아올 것 같아 버리지 못한다. 옷장에, 신발장에 욕심이 짐이 되어 쌓여 간다.
대학 강단에서 고전을 가르쳐온 저자는 병석에 누워 있던 몇 달 동안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병마와 싸우면서 자신의 주변을 가득 채운 물건들이 자신의 안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오히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을 흐리게 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그는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 간소한 삶,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삶의 모토로 정하기에 이른다.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는 ‘정의’의 관점에서 《논어》를 재해석한 전작 《다시, 논어》에 이어, 동양 철학의 근간을 더듬어나가는 저자의 두 번째 고전 읽기다. 여러 판본의 《도덕경》을 탐독하고 분석해 현대인의 삶 속에 스며든 미니멀리즘과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의 접점을 오롯이 담아냈다. 이 책은 사소한 물건부터 감정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 ‘비움’의 가치를 일깨우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물질 만능의 시대에 비움의 가치가 각광받는 역설
현대인의 삶은 소유의 경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의 척도는 가진 것의 양이고, 가지지 못한 자는 패배자가 되어 가난을 벗 삼는 것이 자본주의의 생리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가진 현대인에게서 승자의 행복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현대인이 동경하는 삶의 방식은 ‘비움’이다. 세계적인 의류 기업이 된 유니클로나 생활 전반에 걸친 다양한 물건을 파는 무인양품은 물건 본연의 모습, 즉 ‘비움’을 부각시켜 큰 성공을 거뒀다. 우리는 왜 이처럼 비움을 갈구하는 것일까?
[“성인은 아무런 일도 인위적으로 하지 않는 무위의 세계에 거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도덕경》 2장
노자는 소유하지 않는 데서 만물을 소유하는 힘이 나온다고 말했다. 무위의 세계에 머무는 사람만이 인위적인 행동이나 소유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욕심을 버리면 불필요한 물건이나 넘치는 지식 대신 순수한 자신과 대면할 수 있다. 욕심을 버렸을 뿐인데 참된 자아를 향한 순례가 시작되는 셈이다.
미니멀리즘이 말하는 삶의 방식은 노자의 무위와 다르지 않다. 돈이나 물건을 구하는 데는 반드시 욕심과 번뇌가 따른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이다. 하지만 삶의 방향을 비움에 맞추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삶의 방식이 소유 중심에서 존재 중심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욕심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
무엇이든 가득 찬 상태에서는 마음껏 움직일 수 없다. 돈도, 물건도,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다비드상을 만든 미켈란젤로는 단지 필요없는 부분을 걷어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비드상을 욕망하지 않음으로써 다비드상을 얻었다.
[“성인은 욕망하지 않음을 욕망한다.”] –《도덕경》 64장
고전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통용되는 철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도덕경》은 동양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도가 사상의 효시인 동시에 현대에 와서 더욱 새롭게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역주행’ 스테디셀러라 할 만하다.
때로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붙잡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 난관을 헤쳐 나가는 방법이 된다. 버린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도덕경》의 지혜를 빌려 버려지는 것은 낡은 나이고, 얻는 것은 새로운 나임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변화는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 사는 곳처럼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된다. 스스로의 욕심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고전의 지혜에서 답을 구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