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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예론

한빛비즈

번역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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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좋아요: 20
  • 저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역자 : 정수윤
  • 출간일 : 2016-08-20
  • 페이지 : 320쪽
  • ISBN : 9791157841400
  • 물류코드 :3147

합계 : 15,300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예론’

    이야기의 아름다움 VS 문체의 아름다움

    일본의 천재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예론이 담긴 수필 모음집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이 출간됐다. 소설 외에도 수필과 평론, 소품 등을 다수 발표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청아한 문예’라며 특히 수필을 사랑했다. 이 책은 그중에서 그의 문예론, 창작 철학이 담긴 수필 70여 편을 골라 엮었다. 「라쇼몽」 등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은 국내에 여러 권 소개됐으나 문예론을 집중적으로 다룬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그의 일상, 그리고 당대 함께했던 문인들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문학적 재미를 더한다.

    이야기는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예론 논쟁에서 출발한다. 소설의 재미는 구조적 아름다움에 있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예술의 가치는 예술 그 자체에 있다는 예술지상주의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대립이다. 여기서 아쿠타가와는 줄거리보다 시적 정신이 더 중요함을 거듭 주장한다. 아쿠타가와 문예론의 핵심 논제인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없는 소설’ 그리고 ‘시적 정신’이라는 키워드의 등장이다.

     

    문체의 아름다움은

    눈과 마음의 정확한 표현으로부터 나온다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학적 업적을 기려 제정된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순수문학상이다. 일반적으로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은 문예적으로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는다. 아쿠타가와가 완성한 문체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의 문체는 우선 눈과 마음으로 파악한 것을 정확하게 표현했다. 아울러 예술작품으로서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문체의 아름다움을 획득한 일이었다. 상당수의 작가들이 정확함을 얻기 위해 문체의 아름다움을 희생시키거나 아름다움을 위해 문체의 정확성을 희생시키는 동안, 그는 문체의 아름다움과 정확함을 한꺼번에 이룩했다. 또한 그처럼 한 사람의 문체에서 회화적인 아름다움과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동시에 얻기란 쉽지 않다. 그의 문체에는 눈에 호소하는 아름다움과 귀에 호소하는 아름다움이 둘 다 존재한다. 이 아름다움은 언어의 형태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가 미묘하게 융합되면서 생성됐다. 이런 특색은 문체뿐만 아니라 작품 전체에서 드러난다. _해설 300~301쪽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

    1927년 2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야기의 재미와 예술성이 별개의 문제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에 탐미주의 작가인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줄거리가 주는 재미를 없애는 건 소설이라는 형식이 가진 특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되묻는다.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 가장 우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순수한 소설로는 부족함이 없다고 답하는 아쿠타가와. 훗날 ‘이야기 비판적’인 일본 문학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이 논쟁은 아쿠타가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국 끝을 맺지 못했다.

     

    소설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인은 이야기의 길고 짧음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야기가 기발한지 아닌지는 평가 범위 밖의 문제다. 알다시피 다니자키 준이치로 씨는 기발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많은 소설을 썼고, 그중 몇 편은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남으리라. 다만 그 생명력이 꼭 이야기의 기발함에서 오지는 않는다. 더 나아가 이야기다운 이야기가 있든 없든 작품의 가치와 상관없다. 앞서 말했듯 이야기 없는 소설 혹은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소설도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이 그저 신변잡기를 묘사한 것만은 아니다. 모든 소설 가운데 가장 시에 가까운 소설이며, 산문시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세 번 반복하는데 이야기 없는 소설이 우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속적인 흥미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가장 순수한 소설이다. _본문 90~91쪽

     

    모든 문예는 시적 정신을 갖춰야 한다

    아쿠타가와가 한창 작품 활동에 매진했던 당시 일본 문단에는 ‘사소설(私小說)’이 유행했다. 사소설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그린 일본 특유의 소설 형식이다. 아쿠타가와와 함께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이었던 구메 마사오가 사소설을 산문의 근본으로 평한 데 반해 아쿠타가와는 사소설을 순수한 산문으로 볼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다.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만들고, 예술가의 가치를 정하는 ‘시적 정신’이야말로 아쿠타가와가 평생 추구했던 ‘정신적 혁명’인지도 모른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씨를 만나 논박을 벌일 때 “자네가 말하는 시적 정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의 시적 정신은 가장 넓은 의미의 서정시”라고 답하자 다니자키 씨가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어디든 있지 않은가?” 그때도 말했지만 나 역시 시적 정신이 어디든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마담 보바리』도 『햄릿』도 『신곡』도 『걸리버 여행기』도 모두 시적 정신의 산물이다. 사상이 문예 작품에 깃들려면 반드시 시적 정신이라는 신성한 불을 통과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 불길이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정진하는 힘이 주는 수확은 의외로 많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성한 불이 가진 온도의 높낮이는 곧바로 어떤 작품이 지니는 가치의 높낮이를 결정한다. _본문 118~119쪽

     

    내가 다니자키 준이치로 씨에게 바라는 것도 결국 시적 정신이다. 「문신」의 다니자키 씨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진정 사랑한다면」의 다니자키 씨는 불행히도 시인과 거리가 멀다. “위대한 친구여,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라.” _본문 96쪽

  • [저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1892~1927. 도쿄에서 우유 판매업을 하던 아버지 니하라 토시조와 어머니 후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정신이상 등의 이유로 외가 아쿠타가와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전통예술에 조예가 깊던 이모 후키의 손에 자랐다. 도쿄제국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라쇼몽」, 「코」를 발표해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격찬을 받고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는다. 책에서 인생을 배운 그는 철학, 종교, 문학 서적을 두루 섭렵해 세상의 이치에 다가가고자 했으며, 이런 ‘잡박한’ 소양이 풍성한 소재와 비범한 어휘로 특유의 이지적인 단편소설, 평론, 수필 등을 남기게 한 밑거름이 됐다. 이 책에 실린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줄거리와 구성의 재미를 강조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평론 「요설록」과 논쟁적 위치에서 시적 정신이 발화한 예술로서 소설이 지닌 아름다움과 가치를 주장했다. 두 작가의 격렬한 논쟁은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모두가 깊이 고찰할 기회를 제공한 일본 근대문학사의 주요 사건이었다.

    건강 악화와 친족 문제, 광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으로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아쿠타가와는 서른다섯 살, 머리맡에 여러 편의 유고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하는 유서를 남긴 채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속에 그 불안을 해부하기 위해 써내려간 유작 「톱니바퀴」, 「어느 바보의 일생」 등은 “있는 것은 오직 신경뿐”이라고 고백했던 그가 예리한 신경이라는 물감으로 그려낸 예술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쿠타가와의 오랜 벗인 기쿠치 칸은 자신이 설립한 「문예춘추」에 그의 예술 정신을 기려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으며 이 상은 오늘날까지 일본에서 가장 유력한 신예작가의 등용문이다.

    [역자] 정수윤

    경희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 문학연구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 전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실격』,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 다케히사 유메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등이 있다. 강원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도쿄에서 어학을 공부했다. 2004년부터 편집자로 일하는 한편 만화, 방송물 등의 일본 관련 콘텐츠를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우표, 역사를 부치다』 『로산진의 요리왕국』이 있다.

  • Ⅰ. 창작에 대해

    나와 창작 | 소설을 쓰는 이유 | 눈에 보일 듯한 문장 | 문학 좋아하는 가정에서 |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친구의 부추김 덕분 | 예술 그리고 그 밖의 것 |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 애독서의 인상 | 한문 한시의 즐거움 | 프랑스 문학과 나 | 책 이야기 | 진정성 | 장정에 대한 나의 생각 | 중국에 번역된 일본 소설 | 나의 하이쿠 수업 | 문단 잔소리 | 문장과 말 | 어느 무명작가 | 열 가지 소설 작법 | 연극 만담 | 암중 문답

     

    Ⅱ.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 | 다니자키 준이치로에게 답하다 | 나 | 대작가 | 시가 나오야 | 우리들의 산문 | 시인들의 산문 | 시문학 | 두 대가의 작품 | 염세주의 | 세상에서 잊혀가는 작가들 | 시적 정신 | 모리 오가이 | 시라야나기 슈코 | 문예평론 | 문학적 미개지 | 나쓰메 소세키 | 메리메의 서간집 | 고전 | 저널리즘 | 마사무네 하쿠초의 「단테」 | 지카마쓰 몬자에몬 | 모방 |

    대작을 위한 변호 | 센류 | 시의 형식 | 프롤레타리아 문예 | 구니키다 돗포 | 또다시 다니자키 준이치로에게 답하다 | 야성의 부름 | 서양의 부름 | 비평시대 | 신감각파 | 해명 | 히스테리 |

    인생의 종군기자 | 고전 | 통속소설 | 독창성 | 문예상의 극북 | 속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Ⅲ . 내가 만난 사람들

    소세키산방의 가을 | 기쿠치 칸 | 모리 선생 | 소세키산방의 겨울 | 사토 하루오 | 이웃집 다바타 사람들 | 편집자 다키타 | 하기와라 사쿠타로 | 내 친구 두엇 | 선생의 장례식

     

    주석

    저자 연보

    해설_소설가 호리 다쓰오

    역자 후기

  • 나뭇가지 위 송충이 한 마리는 기온, 날씨, 조류와 같은 적 때문에 끊임없이 생명에 위협을 받는다. 예술가 역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송충이처럼 위험을 견뎌야 한다. 그 가운데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정체되는 일이다. 아니, 예술의 영역에 정체란 없다. 진보하지 않으면 반드시 퇴보한다. 예술가가 퇴보할 때는 꼭 어떤 자동 작용이 일어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온통 비슷한 작품들만 써낸다는 뜻이다. 자동 작용이 시작되면 예술가로서 죽을 위기에 직면했다고 봐야 한다. 나 역시 「용」을 썼을 때 명백히 이런 종류의 죽음에 다가가고 있었다. _pp.22~23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한 장에 몇 엔 몇십 전 하는 원고료 제도를 벗어날 수 없다. 많이 받고 적게 받음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은 물론 불공평한 일이다. 이런 사회에서 태어난 소설가, 희곡가, 비평가 등은 우선 대량 생산을 버틸 수 있는 사업가적 능력을 지녀야 한다. 혹은 나가이 가후 씨 말처럼 부모 형제 처자식을 봉양해야 하는 사람은 글 쓰는 직업에 종사해선 안 된다. 노익장을 과시하며 늘그막에 문필이 점점 더 훌륭해지니 젊은 작가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말 따위는, 그저 사업가적 능력이 출중하고 패거리 가운데 뛰어난 작가라는 뜻일 뿐이다. 실제로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많은 것들이 다 썩어 문드러져서 진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런 무리를 가리켜 늙은 대가라 한다. 이 또한 박장대소할 일이다. _pp.60~61

     

    이야기다운 이야기 없는 소설은 통속적인 흥미가 부족하다. 하지만 가장 바람직한 의미에서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이는 통속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르나르가 그려낸 주인공 필립—시인의 눈과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이 흥미로운 까닭은 그가 우리 곁에 있는 한낱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또한 통속적 흥미라 한다면 부정할 순 없겠지만 애초에 내 논점의 방향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시인의 눈과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평범한 사람’에 있다. 실제로 나는 이런 흥미 때문에 문예를 늘 가까이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 우리는 동물원에서 기린을 보며 경탄해 마지않지만 집고양이에게도 마찬가지로 애착을 느낀다. _p.93

     

    『그 후』, 『문』, 『행인』, 『미치쿠사』 는 모두 나쓰메 선생의 열정이 낳은 작품이다. 선생은 고담하게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리 살았으리라. 하지만 내가 아는 선생의 만년은 문인과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명암』 집필 이전에는 한결 더 매섭고 사나웠다.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누구 못지않게 모질고 호된 사람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하지만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인생 상담을 하러 선생 댁을 찾았는데 선생은 위 상태가 괜찮았는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에게 충고하려는 게 아니네. 그저 내가 자네였다면 이렇게 하겠다 싶을 뿐이지….” 나는 그 순간 선생이 턱을 흘끗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몸 둘 바를 몰랐다. _pp.129~130

     

    모든 시인의 허영심은 말할 것도 없이 후대에 작품을 남기는 데 있다. 아니, ‘모든 시인의 허영심’이 아니다. ‘시를 발표한 모든 시인의 허영심’이다. 시 한 줄 쓰지 않고 자기가 시인인 줄 아는 이도 있는데, 어찌 됐든 그들은 그들의 시적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인들이다. 그러나 운문이든 산문이든 시를 쓴 사람에게만 시인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면, 모든 시인의 문제는 아마도 ‘무엇을 썼느냐’보다 ‘무엇을 쓰지 않았느냐’에 있으리라. 이런 자세는 원고료로 살아가는 시인들의 생활에 어려움을 준다. _p.191

     

    다키타 군은 열정적인 편집자였다. 특히 작가를 부추겨 소설이나 희곡을 쓰게 만드는 데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나도 다키타 군으로부터 작품 칭찬을 받기도 하고, 다키타 군이 보여주는 고심 중인 선배들 작품도 읽으며 이래저래 자극을 받아 어느 틈엔가 백 편 가까운 단편을 썼다. 이는 내가 다키타 군에게 무엇보다 감사하고 싶은 점이다. 나는 또 때때로 추오고론사에서 원고료를 가불 받으려고 다키타 군을 괴롭혔다. 처음 가불 받은 돈은 대략 십 엔 전후였을 텐데, 나는 그만한 돈도 없어 밤 여덟 시쯤인가 다키타 군 집으로 찾아갔다. 다키타 군은 그때 혼고에서 고마고메 사이 골목에 살았다. 그 집을 찾아간 건 딱 한 번뿐이었지만 지금도 대문 안쪽인지 뜰인지에 하얀 풀꽃이 무성히 피어있던 것을 기억한다. _pp.229~230


    • [문예적인 너무나 문 예적인] 



      사실 일본 문학은 늘 멀리해왔다. 일본 소설과 일본영화 모두 늘 2순위로 선택하곤 했었다. 그럼에도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을 손에 잡은 까닭은, 일본의 국민 대작가 나쓰메 소세키 때문이다. 벌써 10년 넘은 대학 신입생 시절, 말 그대로 늙은 & 노교수의 교양 강의에서 나쓰메 소세키에 대해 바운적이 있다. 이때 수업의 한 꼭지로 등장한 사람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였다. 현재에도 종종 일본에서 권위있는 순수만학상의 타이틀로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아쿠타가와상이다. 올해에는 편의점 알바 작가가 쓴 "편의점 인간"이라는 소설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고 한다. 







      * 일본 문학 / 세계 문학에 대해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어렵다고 마냥 거부할수는 없지 않은가? 천천히 읽어보면 퍼즐 맞춰가듯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이야기가 쏙쏙 들어온다.







      Ⅰ 창작에 대해



       -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게으름을 피워서는 그 한계가 어디쯤인지도 알수가 없다. 그러니 다들 괴테가 될 생각으로 정진할 필요가 있다."



      소싯적 글을 써본 사람은 이 문장이 얼마나 힘이 실린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것 같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글 / 문장에 대한 혼을 담아 글을 써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기가 쓴 글과 남이 쓴 글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이 책에 나온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산문들 전부 "글"에 대한 이야기들로 문예를 논하고 있다. 하지만, '단편의 명수'라는 말처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글은 간결하고 깔끔해 군더더기가 없다. 



       



      Ⅱ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책에는 "골계미"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골계미란, "미적 범주의 하나. 자연의 질서나 이치를 의의 있는 것으로 존중하지 않고 추락시킴으로써 미의식이 나타난다. 풍자와 해학의 수법으로 우스꽝스러운 상황이나 인간상을구현하며 익살을 부리는 가운데 어떤 교훈을 준다."​라고 하는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문장과 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다.



       



      사실 이책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이 아니다. 소설인줄 알고 집어들었다간 첫장부터 김이 빠질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독백과 비판 그리고 때론 염세주의에 가까운 회의가 가득하다. 아쿠타가와의 작품이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그의 인생사를 엿볼 수 있는 산문집 이다.



       



      Ⅲ 내가 만난 사람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울분에 차서 "모방"에 대해 이야기 했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억울함도 느껴졌다. 아쿠타가와의 생존당시, 서양인들이 바라보는 일본인들은 "모방"에 능한 사람으로 국한되어있었다. 모방만 할줄 아는 사람들. 하지만 아쿠타가와는 "제대로 모방을 한다면 모방보다 뛰어난 도구는 없다"라고 이야기 한다. 비단 소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 이지만, 그 당시에는 쉽게 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을것 같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우리나라 작가 이상과 정말 많이 닮아있다고 배웠다. 이 내용을 글로 배울때는 비슷한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상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상의 작품 날개의 첫구절에 "박제된 천재를 아시오"가 의미하는 것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소름이 돋기도 했다. 



       



      일본문학 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문학까지 문장과 글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평생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필독서이다.


    • 일본 문학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두 사람이 있다. 무라카미 류(하루키가 아니라)와 히라노 게이치로이다.

       

      무라카미 류와 히라노 게이치로는 데뷔부터 공통점이 있다. 젊은 나이에 데뷔했다는 것(20대 초반),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나 게이치로의 ‘일식’처럼 그 시대와는 다소 맞지 않는 충격적인 데뷔작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가지 공통 사항으로 인해 두 사람 사에는 커다란 교집합이 존재하게 되었다. 바로 일종의 신춘문예상 격인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라는 점이다. 아쿠타가와 상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아무나 주지 않는다. 문단에 의미가 있는 젊은 (천재)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20년 이상을 건너 뛴 채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류와 게이치로의 책이 꽂힌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저 두 사람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고, 둘 다 젊은 나이에 (내게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데뷔를 했지. 그리고, 그래서, 그 결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고. 그런데, 대관절 정작 아쿠타가와는 무엇 또는 누구이길래 저 두사람이 같은 상을 받은 걸까?’ 라고.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아쿠타가와는 사람 이름이고, 이미 한 세기 전에 인정 받은 젊은, 그리고 요절한 천재 작가라는 것을.

       

      이 책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소설은 아니다. 단편집 또는 작품선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이미 몇 권의 도서과 나와 있다. 이 책은, 그가 쓴 독백이자 자기 성찰이며 비판이고 비관이자, 아쿠타가와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일종의 에세이집이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I부 창작에 대해는 본인 자체의 작품 활동과 배경에 대해 논하고 있다. 2부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에서는 본인의 작품 세계를 넘어 전반적인 문학 풍조와 평론을 논하고 있다. 3부 내가 만난 사람들은 다시 조금 더 개인적인 관점으로 돌아와서 그를 둘러싼 선후배와 동료 등을 가벼운 조로 이야기한다. 특히 내게 흥미로웠던 것은 1부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무라카미 류와 히라노 게이치로가 어떻게 신인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대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슬프다.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고 이모에게서 자란 유년기를 딛고 촉망 받는 작가로 성장한 그의 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말-20세기초의 동서양 많은 예술가가 그러했듯이 아쿠타가와 역시 개인적인 갈등, 고민 그리고 한계라는 어려움과 동시에 가족 내에서의 문제와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이 짧은 글들 구석 구석에 날카로운 칼날처럼 담겨져 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국 스스로 택한 죽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인 나로서는 그의 투쟁과 체념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능력 있고, 촉망 받는 젊은 작가였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한 아쿠타가와.

       


      그를 기려서 일본 문학계에서는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작가 두 사람이 그 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이 책은 100년 전 일본 땅에서의 소설가를 이해하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무라카미 류나 히라노 게이치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한다(최근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 중 또 다른 수상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편협한 문학 취향 내에서는 오직 두 사람밖에 모르는 관계로 더 이상의 소개는 생략한다...). 

       

      또 한 가지.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한국 사람이다. 작가이다. 아쿠타가와와 매우 많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상이다. 젊은 천재, 우울증, 요절,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권위 있는 문학상. 마치 쌍둥이 같고 형제같다.

      궁금한 마음에 찾아보았더니, 이상이 아쿠타가와를 동경했다고 한다. 이상의 ‘날개’에서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첫 구절,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의 대상이 바로 아쿠타가와라는 이야기도 있었다(진위 여부는 내 부족한 식견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면, 이 책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은 난해한 천재로만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상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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