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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파도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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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5

by 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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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선수 마스트[1]에는 ‘steering light’라는 등이 있다. 안개에 둘러싸인 깜깜한 밤이어도 이 등을 켜면 뱃머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야간에 좁은 수로나 어선 무리를 통과할 때 주로 사용하는데, 뱃머리가 회전하는 정도를 확인할 수 있어 안전 운항에 큰 도움이 된다. 어선 불빛들과 잘 구별하기 위해 보통 파란 불빛을 쓴다.

 

[1] 마스트 : 배의 중심선 상의 갑판에 수직으로 세운 기둥. 등을 달거나 신호기를 게양하는데 쓴다. 범선시대에는 돛을 다는 기둥으로 쓰여 ‘돛대’로 불리기도 했다.

 

두꺼운 안개가 시야를 막은 데다 파도까지 사나운 날이었다. 앞이 흐려 근처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조차 희미한 실루엣처럼 아른거릴 뿐이었다. 파도가 배를 좌우로 밀칠 때마다 뱃머리가 심하게 흔들렸다. 파도에 맞고 바람이 할퀼 때마다 배는 부르르 떤다. 그 진동은 배와 운명을 같이 한 사람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두꺼운 강판을 밀치고 세차게 긁어댈 때마다 그 힘을 견뎌내는 배의 저항은 강철의 깊고 무거운 신음으로 변해 선체 곳곳에서 메아리친다. 강철의 연결 부위가 삐걱거리거나 때때로 우두둑거리는 소리는 바람과 파도의 작용이 만들어낸다. 작은 섬과 맞먹는 덩치라 할지라도 성난 자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때 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동력을 유지하고, 선수에서 빛나는 별을 따라 지금의 항로를 이탈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할 뿐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것을 우린 운명이라 한다. 그러니 지금 내 눈앞의 거대한 바람과 파도는 운명일 뿐이다.

 

운명은 거역할 수 없다. 견뎌야 한다.

운명을 극복한다거나 맞선다는 거창한 포부는 자연 앞에서 부질없다. 나는 마스트에 켜진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바다가 잔잔해질 때까지. 삶의 시련을 극복하란 말이 때론 무책임하게 들릴 때가 있다. 극복이란 말의 추상성이 너무 커 사실 그 단어가 진정 무슨 의미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누구나 들어 익숙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설명할 도리가 없는 그런 추상성이 극복이란 두 음절에 갇혀 있다. 그러나 극복이 아니라 순응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좌우로 휘몰아치는 삶 앞에 거창한 어떤 철학(철학이라고 하지만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도 없는)을 내보이는 게 아니라, 당장 지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나의 경우에는 뱃머리의 불빛에 눈을 떼지 않는 일)에 집중하고 그 삶을 유지하다 보면, 상황은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져 있었다.

바다를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몇 해간 대양을 떠돌면서 내가 만난 바다는 늘 그랬다. 아무리 배가 흔들리고 요동쳐도 선수의 빛은 늘 그 자리에 있다. 그 빛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방향을 잃지 않는다. 삶을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응하며 기다릴 때 다시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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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잔잔해지고 안개가 옅어졌다. 어느새 검은 바다는 푸르고 투명한 피부를 드러내며 심해까지 비추고 있었다.

 

그런게 길이 다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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