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감상법까지
인류의 시간과 함께한 위대한 도구의 인문학
시계의 역사는 기원전 30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발명된 해시계에서 시작되었다. 13세기 유럽에 교회의 탑시계가 등장하였고, 이후 부품과 장치가 소형화되어 17세기 말 회중시계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20세기 초,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손목시계가 개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계 전문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처럼 5,000년이 넘는 시계의 역사에 새겨진 사건, 인물, 기념비적인 기술과 도시, 게다가 예술까지 시계에 관한 모든 지식을 소개한다.
알프스 고산지대에 둘러싸인 고립된 국가 스위스가 어떻게 유럽을 뛰어넘어 세계 최고의 시계 강국이 되었는지, 퍼페추얼 캘린더·미닛 리피터·투르비용 등 3대 복잡장치로 불리는 초고도 시계술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또한 최초의 손목시계는 여성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고 남성용은 이후 전쟁 때문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 등등 우리가 궁금했던 시계 지식이 매 페이지마다 이어진다. 예를 들어 유럽에 대량생산을 일으킨 미국식 제조 시스템, 20세기 냉전 덕분에 살아남은 독일 시계의 아이러니, 스위스와 일본의 시계 시장 패권사, 시계 디자인의 두 조류 아르데코와 바우하우스, 회화에 그려진 시계를 통해 알아보는 시대상과 문화, 시대 혁신을 일으킨 시계 모델들, 올림픽 타임키퍼로 대표되는 시간 측정의 발전사, 시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꼽히는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부터 현대 시계의 슈퍼스타 프랭크 뮬러까지 선구적인 시계 장인, 세계 3대 시계 그룹 리치몬트, 스와치, LVMH의 전략을 통해 알아보는 트렌드 등등 시간과 시계에 얽힌 역사, 문화, 기술이 망라되어 있다.
저자의 말처럼 시계의 역사는 인간이 지닌 지적 호기심의 역사이며, 시계를 안다는 것은 인류가 터득한 지혜의 역사를 배운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시계의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사실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만족하고 자신에게 걸맞은 손목시계를 만날 수 있다.
나의 결을 나타내고 나의 격을 높이는 특별한 도구
시계는 자기 표현의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봅니까?”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블랑팡’을 부흥시키고 ‘위블로’를 메가브랜드를 키워낸 스위스 시계업계의 거물 장 클로드 비버는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현재,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이제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나 액세서리를 넘어서 나의 가치를 나타내고 나의 품격을 높이는 중요한 아이템이 되었다. 한마디로 시계를 착용한다는 것은, 가장 나다운 모습을 표현하는 행위 중 하나가 된 것이며, 따라서 시계를 아는 만큼 나를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
이를 돕기 위해 이 책은 다이얼, 인덱스, 시곗바늘, 케이스, 스트랩 등 시계 사양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 사양들을 꼼꼼히 읽는 법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소재와 표면 처리법, 첨단 동력 장치, 방수 시스템 같은 최신의 시계 기술은 물론이고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 오데마 피게, 브레게, 랑에 운트 죄네, 예거 르쿨트르 등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의 역사와 트렌드까지 소개하고 있어 시계 입문자와 애호가 모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와 모델을 보는 안목을 기르는 동시에 시계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있는데 굳이 무겁게 시계를 차야 하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이제 시계는 새로운 가치로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손목시계가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면 어떤 제품을 고르든 그것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마음에 드는 손목시계를 만나 함께 시간을 새겨 나가는 것 자체에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에는 이야기가 있다. 안경에는 광학과 의학 발전의 역사가, 자동차에는 자연 물리에 맞서는 동역학의 역사가 담겨 있듯이, 시계에는 인류 발전의 시간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디지털 기기들이 끊임없이 등장해도 아날로그 시계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최신 기기들이 따라잡고 싶어도 절대 그럴 수 없는 오랜 시간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책 《손목시계의 교양》은 바로 그 시간의 역사를 다시 새길 기회를 선물할 것이다.
책 속으로
원래 달력은 태양과 달로부터 탄생했다.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를 관찰하다 보니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식에 규칙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년에 네 번 낮과 밤의 길이가 바뀌는 경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은 ‘동지’, 낮과 밤이 같아지는 날은 ‘춘분’과 ‘추분’,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은 ‘하지’로 정했다. 이 네 가지 경계가 달력을 만드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 규칙에 달의 주기를 조합했다. ‘달이 없는 밤~보름달~달이 없는 밤’의 주기는 약 30일이다. 이 주기를 세 번 반복하면 낮과 밤의 길이가 바뀌는 경계가 된다. 즉 달의 주기인 약 30일이 세 번 반복되면 낮과 밤의 관계가 바뀌고 날씨도 변한다. 이 세트가 네 번 끝나면 다시 같은 계절(비가 오거나 더워지거나 꽃이 피는 등)로 돌아온다. 즉 이것이 1년이라는 뜻이다.
_19~20쪽, <PART 01 시계의 역사학> 중에서
말과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에는 먼 곳에 사는 사람과 교류할 일이 적어서 도시마다 표준시가 달라도 큰 불편은 없다. 하지만 19세기 초 영국에서 증기기관차가 발명되고 이동 거리가 길어지자 문제가 발생한다. 각지의 표준시가 제각각이었던 탓에 안전한 철도 시간표를 편성하지 못해서 중대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에 영국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시계를 표준시로 정해서 운행 시간표를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처럼 광대한 국가인 경우는 표준시를 하나로 통일하기가 어렵다. 사실 1869년에 완성된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200개 이상의 표준시를 사용해 운항했을 정도로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이때 나선 인물이 캐나다의 엔지니어 샌드퍼드 플레밍(Sandford Fleming)이었다. 그는 ‘지구를 경도 15도씩 총 24개로 나눠 1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표준시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한다. 1884년에 개최된 국제 자오선 회의에서 그리니치 천문대가 본초 자오선(경도 0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을 계기로 이 아이디어에 대한 법 정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전 세계 국가에 24개 표준시가 설정되었다. 이것이 ‘시차’의 탄생이다.
_53~54쪽, <PART 01 시계의 역사학> 중에서
‘바우하우스’는 독일의 공예학교 바우하우스에서 생겨난 디자인 양식이다. 아르데코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에 시작되었지만, 바우하우스는 철저하게 효율주의를 따랐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은 혼란의 한복판에 있었고, 학교는 자재와 자금 모두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금 벌이의 일환으로 디자인 상품을 판매할 정도였다. 소비자가 선호하는 상품을 잘 팔리는 가격에 제조하려면 우선 기능과 비용을 중시하고 이를 위한 디자인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이라는 ‘기능미’ 개념이 생겨났다. 단순하고 단정한 케이스 형태와 가시성 좋은 표시 등 모든 것 이 이 이론을 따른다.
_86쪽, <PART 02 시계의 문화학> 중에서
독립 시계공으로서 가장 큰 성공을 이룬 인물은 프랭크 뮬러(Franck Muller)다. 시계 브랜드 ‘프랭크 뮬러’는 지금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출발점은 그가 혼자서 시작한 시계 공방이었다. 1958년에 태어난 프랭크 뮬러는 제네바 시계 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동급생 대부분이 명망 있는 시계 브랜드에 취직하는 가운데, 그가 선택한 길은 시계공 스벤 안데르센(Svend Andersen)의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파 텍필립 출신의 숙련 시계공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그는 지식과 기술을 갈고닦았다. 한편 박물관에 보관된 오래된 시계를 복구하는 작업을 통해 수백 년 전 시계공의 예지를 접한다. 대형 시계 브랜드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는 시계 애호가의 주문에 따른 맞춤형 시계 제작도 시작했다. 사실 그의 대명사인 우아하고 아름다운 토노 카벡스(Tonneau Curvex) 케이스는 시계 애호가인 여성에게 “좀 더 당신다운 디자인을 만들어보면 어때요?”라는 조언을 듣고 탄생한 것이다. 안목 높은 멋쟁이들과의 교류가 그의 창조성을 더욱 끌어냈다
_111쪽, <PART 02 시계의 문화학> 중에서
기계식 시계의 세계에서는 시각 표시 기능 이외의 부가 기능이 시계의 매력이자 화젯거리가 된다. 실용적인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조그만 케이스 안에 가득 담긴 수많은 톱니바퀴와 레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에 시계 애호가는 마음을 빼앗긴다. 게다가 장치에는 ‘격’이 있다. 부품을 많이 사용할수록, 즉 복잡할수록 상급으로 여겨진다. 그중에서도 최고봉으로 여겨지는 것이 ‘영구 달력’, ‘투르비용’, ‘미닛 리피터’ 등 3개 장치다. 초복잡장치로 불리는 이 장치들은 시계 애호가에게 동경의 존 재다.
_146쪽, <PART 03 시계의 상식학> 중에서
좋은 손목시계의 지표는 다양한 홀마크(hallmark)다. 가장 유명한 홀마크는 다이얼에 적힌 ‘SWISS MADE(스위스 메이드)’라는 글자다. 이 글자를 제품에 표기하려면 원재료의 일정 비율을 스위스산으로 하거나, 생산 비용의 일정 비율을 스위스 내에서 부담할 것 등을 의무화한 스위스니스(Swissness) 법을 충족해야 한다. 시계의 경우는 ‘적어도 비용의 60퍼센트를 스위스 내에서 부담할 것, 또 중요한 제조 과정 중 적어도 하나를 스위스 내에서 수행할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즉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중국 등에서 많은 부품을 제작한다면 SWISS MADE를 내세울 수 없다. 다이얼 위에 ‘CHRONOMETER(크로노미터)’라고 적혀 있는 시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제 규격인 ISO3159에서 규정된 시계의 정밀도 기준에 따라 공식 검사기관이 15일간의 테스트를 실시한다. 크로노미터 인증은 이 국제 인증 기준을 통과한 고정밀도 시계에만 주어진다. 스위스의 뇌샤텔에 있는 공식 크로노미터 협회(Contrôe Officiel Suisse des Chronomères)가 부여하는 COSC 인증 크로노미터가 가장 유명하다.
_169~170쪽, <PART 03 시계의 상식학> 중에서
고급 모델의 대부분은 파란색 바늘을 사용한다. 블루스틸 바늘(blue steel hands)로 불리는 것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바늘을 가열하면 금속 표면에 산화피막이 생긴다. 산화피막의 색은 가열하는 온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블루스틸이 되려면 약 300도로 가열해야 한다. 다만 그 온도대에 들어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따라서 장인은 색의 변화를 잘 지켜보면서 알코올램프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꼼꼼히 굽는다. 참고로 독일의 모리츠 그로스만(Moritz Grossmann)이라는 작은 실력파 브랜드는 블루가 되기 바로 직전인 약 280도에서 가열을 멈춘다. 이렇게 하면 깊이감 있는 브라운 바이올렛 색깔의 바늘이 완성된다. 바늘 색깔에도 고집이 담기는 것이다.
_212~214쪽, <PART 04 시계의 감상학> 중에서
‘기계식 시계는 평생 간다’고들 한다. 분명 정기적으로 유지보수를 하고 서비스센터에서 오버홀을 받는다면 기본적으로 평생은 물론 대를 넘어 시계를 물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평생 애정을 줄 수 있을 때에 한해서다. 특히 최근의 손목시계는 트렌드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다이얼의 색은 시대의 분위기에 좌우되고, 존재감 넘치던 케이스는 나이가 들수록 무겁게 느껴진다. 노안이 시작되면 복잡하고 깨알 같은 표시는 볼 수 없다. 시계는 평생 간다지만, 실제로 평생 끝까지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지는 결국 쓰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다.
_262~263쪽, <PART 05 시계의 기술학> 중에서
스위스는 네 개 언어권(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으로 나뉜다. 프랑스에서 망명해온 시계 장인들이 시계 산업을 확산시켰다는 역사가 있어, 스위스의 시계업계는 프랑스어권이 강하다. 그런 가운데 기염을 토하는 브랜드가 바로 ‘IWC 샤프 하우젠’이다. 창업자이자 시계 기사인 플로렌틴 아리오스토 존스(Florentine Ariosto Jones)는 미국인이다. 전력을 사용해 공작 기계를 작동시키는 근대적인 방식으로 시계를 제작했다. 그래서 라인 강의 수류(水流)를 이용한 근대적인 수력 발전소가 있던 스위스 북부의 마을 샤프하우젠을 거점으로 골랐다. 이 마을은 독일 쪽으로 움푹 들어간 독일어권에 위치하며 문화도 독일의 영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 브랜드의 시계는 순전한 스위스 시계이면서도 어딘가 독일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_311~313쪽, <PART 06 손목시계 브랜드 30선> 중에서
고정밀도 시계의 명문이자 올림픽의 공식 타임키퍼도 담당하는 ‘오메가’는 시계업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메이저 브랜드다. 브랜드 이름이 유명해진 계기는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동행했다는 ‘문 워치(Moon Watch)’의 전설이다. 아폴로 계획 이후로는 어떤 나라도 달 표면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여전히 오메가의 스피드마스터는 달 표면에서 시각을 표시한 유일한 기계식 시계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공식 장비품이다. 따라서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화성에서 시각을 표시한 최초의 시계 브랜드’가 될 가능성도 있다.
_323쪽, <PART 06 손목시계 브랜드 30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