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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리터의 피

피에 얽힌 의학, 신화, 역사 그리고 돈

한빛비즈

번역서

판매중

5리터의 피
좋아요: 3
  • 저자 : 로즈 조지
  • 역자 : 김정아
  • 출간일 : 2021-07-27
  • 페이지 : 492쪽
  • ISBN : 9791157845248
  • 물류코드 :3345

합계 : 22,500

  • ‘피’를 인체 밖으로 끌어내어 풀어낸 놀라운 논픽션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르포 작가 로즈 조지는 보이지는 않지만 지극히 중요한 주제를 대담하게 다루기로 유명하다. 특히 하나의 주제를 파고드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어,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세계 유수의 언론들로부터 주목을 받는다. 이번 신작 《5리터의 피》 또한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네이처> <월 스트리트 저널> <가디언> 등 세계적 매체들의 극찬을 받았으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의 도서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 또 빌 게이츠의 ‘여름휴가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화제가 되었다.

     

    “혈액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이 책은 우리 몸속에 있는 피를 의학, 역사, 사회, 경제 등 모든 관점에서 파헤쳐 우리가 몰랐던 피의 이면과 진실을 제시한다. 책은 고대의 사혈 관습에서 출발해 피에 얽힌 그릇된 신화와 믿음의 역사를 소개하고, 오늘날의 대량 헌혈 체계를 마련한 선구자들을 조명하며,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겪는 성 차별적 처우를 밝힌다. 그런가 하면 남아프리카에 만연한 HIV 바이러스의 실태를 파헤치고, 피를 여전히 거래 상품으로 취급하는 미국의 혈장 산업을 고발하고, 혈액의 미래까지 살펴본다.

    이 책의 제목 ‘5리터의 피’는 일반적인 성인의 혈액량을 가리킨다. 과학과 전염병, 국가와 개인사, 고대사와 현대사에 걸쳐 이 책은 우리 몸속에 담긴 5리터의 피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보여준다.

     

     

    추천의 글

     

    “혈액에 관해 새로운 인식을 가져다줄 놀랍도록 흥미로운 사실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도 피가 끓을 것이다.” - 빌 게이츠

     

    “살벌하게 멋진 책이다. 생각지도 못한 의료 역사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정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작가 앞에서 독자들은 때로 들떴다가 때로 오싹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 메리 로치, 《전쟁에서 살아남기》 저자

     

    “아주 좋은 책이다. 작가 로즈 조지는 모든 페이지마다 열정 넘치는 토론, 합리적 도덕감각, 냉철한 유쾌함을 담았다.” - 뉴욕 타임스

     

    “독자를 순간순간 정의감에 불타오르게 만드는 강렬한 피의 연대기.” - 월 스트리트 저널 

     

    “경이롭다. 오늘날 논픽션 분야에서 손꼽히는 작가가 쓴 매혹적인 필독서.” - 가디언 

     

    “피는 생명이자 죽음이다. 작가는 이처럼 모순되는 양극단 사이를 오가며 폭넓게, 때론 불안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술술 읽히고 유익하다.” - 네이처

     

    “용감한 책이다. 맹렬하고 법의학적인 이 책은 우리의 금기를 잡아 찢어버린다. 그리하여 폭로한 것은 이상하게도 아름답다.” - 선데이 타임스

     

    “작가는 거머리, 혈액형, 혈소판, 헌혈, 생리, 혈우병 등 다양한 문제를 밝히기 위해 붉은 물질의 파도 속으로 대담하게 뛰어들었다.” - 더 타임스

     

    “혈액에 대한 작가의 경험과 열의, 그리고 역사, 정치, 사회, 생물학과 도덕적 측면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관심이 드러난다. 일부는 이상야릇하고 섬뜩하지만 모두 혈액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 사이언스 

  • [저자] 로즈 조지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저명한 논픽션 작가. 세계적인 컬처 매거진 〈컬러스(COLORS)〉의 수석 편집자를 지냈으며, 〈뉴욕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 〈가디언〉 〈인디펜던트〉 〈데일리 텔레그래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등 유수의 매체에 기고해왔다. 코소보 내전 당시 전쟁 특파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사담 후세인을 여러 차례 인터뷰했고 그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기도 했다. 《5리터의 피》는 빌 게이츠로부터 “혈액에 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극찬을 받았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의 도서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바 있다. 그 밖의 저서로는, 라이베리아 난민 문제를 파헤친 《제거된 삶(A Life Removed)》, 화장실과 위생의 문화사를 다룬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The Big Necessity)》, 국제 해운 세계를 탐사한 《모든 것의 90퍼센트(Ninety Percent of Everything)》 등이 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현대언어학 학사 학위를,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 요크셔에 거주하고 있다.

    [역자] 김정아

    사람과 세상이 궁금한 번역 노동자. 글밥 아카데미 수료 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척 피니》, 《인류 진화의 무기, 친화력》, 《5리터의 피》,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휴머놀로지》, 《초연결》, 《당신의 잠든 부를 깨워라》, 《부자 교육》 등이 있다. 

  • 1장 500밀리리터의 힘

    2장 가치 있는 흡혈 악마, 거머리

    3장 헌혈의 선구자

    4장 피를 타고 퍼지는 바이러스

    5장 구원자이자 파괴자, 혈장

    6장 더러운 피, 월경

    7장 지저분한 천, 생리대

    8장 출혈 환자를 살려라, 코드 레드

    9장 피의 미래

     

    감사의 글

    더 읽을거리

  • 인체에서 가장 귀중하고 신비롭고 위험한 물질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작가는 자궁내막증을 앓고 있어 생리 때마다 다달이 몸과 마음이 뒤틀리는 고통을 겪는다. 이런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생리를 주제로 한 집필을 시작하다, 피의 모든 면을 다루는 쪽으로 범위를 넓힌 것이다. 결국 자연스레 피에 얽힌 의학, 과학, 역사, 문화, 종교, 경제 등 모든 이야기가 담긴 이 책 《5리터의 피》가 완성되었다.

    우선 피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고대에는 사혈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여겼다.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인류는 몇천 년 동안 두통부터 질식까지 다양한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피를 뽑았다. 심지어 산업혁명 이후의 19세기까지도. 오늘날에는 생명을 위해 수혈을 하지만, 인류의 대부분 역사에서 우리는 건강을 위해 몸에 피를 넣기보다 빼내는 쪽을 선호한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사혈의 역사와, 오늘날까지 여전히 의학적으로 쓰이고 있는 거머리 사혈을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취재한 웨일스 서남부에 위치한 의료용 거머리 공급업체 이야기는 거머리가 얼마나 인류에게 가치 있는 악마(?)인지를 알게 해준다. 

    이외에도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에 사로잡혀 수많은 부상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나치 독일의 착오, 혈액형에 따라 인간의 성격을 구분한 일본의 관습 등 피의 그릇된 역사부터 피가 신체 어디에서 생성되는지, 우리가 헌혈한 피가 어떻게 보관, 처리, 유통되는지에 대한 상식에 이르기까지 작가 특유의 흡입력 넘치는 문체로 술술 풀어낸다. 그 덕분에 피가 인류의 역사에서 얼마나 위험하고도 신비로운 물질인지를 제대로 엿볼 수 있다.

     

    생명과 죽음을 결정짓는 구원자이자 파괴자

    세계 어딘가에서 3초마다 누군가는 낯선 사람의 피를 받는다. 176개국의 헌혈 센터 1만 3,282곳에서 해마다 1억 1,000만 명이 헌혈한다. 이 모든 피는 외상 환자와 암 환자, 만성 질환자, 그리고 아이를 낳는 산모에게 수혈된다. 오늘날 우리는 헌혈과 수혈을 매우 흔하게 생각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몸속의 물질이 다른 사람에게 이동해 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현대의 헌혈-수혈 체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작가는 우리에게는 다소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선구자를 소개한다. 한 사람은 20세기 초 여성이라는 장벽을 뚫고 대규모 헌혈, 혈액 저장 및 운송, 수혈 시스템을 마련한 여성 의학자 재닛 마리아 본이며, 다른 한 사람은 오늘날과 같은 자발적 혈액 기증 체계를 만든 영국 중간급 공무원 퍼시 레인 올리버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피를 기증했는지, 또 그 피를 병사들에게 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위험을 무릅썼는지에 대한 에피소드는 진지하면서도 자못 재미있기까지 하다.

    피는 이처럼 인간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염병과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같은 피의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를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흑인 거주구역으로 안내한다. 이제는 HIV가 통제 가능한 바이러스라고 하나, 세계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작가는 이곳 케이프타운 흑인 거주지의 실태를 통해 밝힌다. 그리고 힘주어 말한다. HIV는 여전히 들끓고 있다고.

     

    인권을 유린하고 자본을 유혹하는 자원

    인간과 동물의 피가 전 세계 상품 중 교역량이 13번째로 많다는 사실을 아는가? 혈액제제는 대부분 혈장에서 추출한 것인데, 원산지는 세계 최대의 혈장 수출국, 바로 미국이다. 미국이 이런 혈액 수출로 벌어들인 수익은 연간 약 200억 달러에 이른다. 한마디로 미국은 혈액의 OPEC인 셈이다. 문제는 미국이 지금껏 혈액을 상업적 거래물로 취급하면서 전 세계에 HIV나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섞인 ‘더러운 피’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캐나나 중남부 초원지대에 위치한 어느 혈장 기업을 취재해 혈액 거래의 어두운 이면을 고발하고, 오염된 혈장을 수혈해 이중으로 고통받는 혈우병 환자들의 사연을 들려준다.

    피를 둘러싼 어두운 현실은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차우파디’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차우파디는 네팔 지역에서 행해지는 악습으로, 생리하는 여성과 소녀를 외딴 헛간에서 지내게 하는 제도다. 작가는 직접 네팔 서부의 시골 마을을 찾아가 우리에게 심각한 성차별이자 인권 유린의 현장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생리대 한 장도 사치품이다. 이 슬픈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016년 우리에게 안타까움과 충격을 안겨준 ‘깔창 생리대’ 사건이 있지 않은가. 작가는 케냐의 빈민가 소녀들 중 절반이 생리대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매춘을 한다고 보고한다. ‘생리대를 위한 섹스’인 것이다. 빌 게이츠가 그랬듯 누구나 이 대목에서 피가 끓고 말 것이다. 

     

    인류의 운명을 결정해온 붉은 액체의 진실

    이제는 고대처럼 인간이나 짐승의 피를 제물로 바치지 않지만, 피의 힘은 지금까지 언어에 그대로 남아 있다. 혈연, 혈맹, 혈통 같은 단어를 생각해보라. 또 피가 끓는다, 피가 마른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같은 표현에서는 격정적인 감정이 자리한다. 실제로 피는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힘이 있고, 그렇기에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피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피의 실체는 지금까지 대부분 신비에 싸여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신비의 베일을 하나하나 벗겨 우리가 피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가도록 인도한다.

     

     

    책 속으로

     

    사람들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 하면 골수를 자극해 적혈구를 더 많이 만들게 하는 호르몬, 적혈구생성소(erythropoietin: EPO) 악용을 흔히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암스트롱 하면 어김없이 그의 피로 가득 찬 냉장고가 떠오른다. 암스트롱은 자신의 피를 빼내 자가수혈용으로 저장했다. 신선한 피를 일정량 수혈하면 적혈구가 더 많아지고, 따라서 근육에 더 많은 산소를 공급하므로, 여기에 힘입어 사이클 선수가 산을 더 세차게 오르고 육상 선수가 운동장을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는 피를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_14쪽, <1장 500밀리리터의 힘> 중에서

     

    인류는 머나먼 옛날부터 거머리와 공존했다. 이미 수천 년 전에 거머리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먼 옛날 사람들은 병이 나는 이유가 다른 무엇보다도 피가 너무 많아서라고 생각했다. 정맥 절개용 칼, 사혈침과 더불어, 거머리는 피 뽑기용 필수 의료 도구였다. 바빌론 사람들은 줄무늬가 있는 어떤 벌레가 피를 빨면 “두툼해진다”는 기록을 남겼고, 또 거머리를 치유의 여신 굴라(Gula)의 딸로 묘사했다. 힌두교에서 치유, 의술, 아유르베다의 신으로 모시는 단반타리는 대개 네 팔 중 하나에 거머리 단지를 든 모습으로 그려진다. 3,300~3,5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 왕실 서기 우세르하트의 무덤 속 벽화에는 거머리를 이용해 치료하는 한 인물이 보인다.

    _57쪽, <2장 가치 있는 흡혈 악마, 거머리> 중에서

     

    꾸준히 혈액 수송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는 레이디 던스턴(Lady Dunstan)이라는 여성도 있었다. “적어도 70은 되었을 그녀는 언제나 메리 왕비처럼 진주 목걸이를 걸고 작은 모자를 썼지만, 겁먹은 모습은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레이디 던스턴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길. 당시 상황은 대부분 힘겨웠고 끔찍할 때도 많았다. 의학연구위원회에 따르면 “정전 상황에서 길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아는 것도 필수였지만, 실제로 공습이 일어날 때 기꺼이 차를 몰 굳센 의지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운전사들이 어찌나 능숙하게 차를 몰았던지, 가끔은 수혈받을 부상자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할 때도 있었다.

    _136쪽, <3장 헌혈의 선구자> 중에서

     

    축복자. 이 말은 젊은 여성이 남자친구에게 선물을 받았을 때 소셜 미디어에 ‘축복받았다’고 글을 올리면서 생겨났다. 뜻은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랐다. 매춘 여성이 매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단체의 활동가가 보기에 축복은 곧 매춘이었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나이 든 남성에게 섹스를 제공한 대가로 받는 보상이었다. 공중 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대가가 오가는 성관계’였다. 카옐리차에서 성폭력 상담소 투투젤라를 운영하는 제닌 조사이어스(Genine Josias) 박사가 보기에는 축복은 강간이고, 축복자는 강간범이었다. “그 아이들은 미성년자예요. 성관계에 합의할 나이가 아니라고요. 누가 뭐래도 그건 강간이에요.” 그런데 누가 어떻게 바라보든, 남아공에서 축복은 HIV를 놀랍도록 빠르게 퍼뜨리는 원인이다

    _168~169쪽, <4장 피를 타고 퍼지는 바이러스> 중에서

     

    혈우병은 끔찍하다.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면, 혈우병 환자는 대개 뇌나 소화기관에 일어난 출혈로 죽는다. 제아무리 부자라도, 제아무리 대단한 집안 출신이라도, 혈우병 환자는 모두 같은 운명을 맞았다. 이를테면 혈우병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으로 가장 유명한 빅토리아 여왕은 고질병인 근친결혼에 목매던 유럽 왕실에 혈우병을 널리 퍼트렸다. 가장 잘 알려진 혈우병 왕족은 러시아의 황태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다. 설사 알렉세이가 예카테린부르크의 지하실에서 총살되지 않았더라도, 십중팔구 젊은 나이에 출혈로 죽었을 것이다. 혈우병은 치료하기 어렵고 돈이 많이 들므로, 지금도 대부분 나라에서 혈우병 환자는 때 이른 죽음을 벗어나지 못한다.

    _213~214쪽, <5장 구원자이자 파괴자, 혈장> 중에서

     

    네팔 서부 마을 자무에 사는 라다는 그러잖아도 불가촉천민인 대장장이 계급에 속한다. 그 와중에 월경까지 하면 라다의 계급은 더 떨어진다. 겨우 16살인데 생리하는 동안에는 집 안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되고, 달랑 맨밥만 먹어야 한다. 다른 여성을 만지면 상대방을 더럽힌다고 여겨져, 할머니나 여동생마저 만지면 안 된다. 어른이든 아이든 남성을 만지면, 상대가 으슬으슬 추위를 느끼고 아플 것이다. 버터나 물소 젖을 먹으면 물소가 아파 젖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원에 들어가거나 예배를 올리면 신이 분노하여 뱀이나 다른 재앙으로 앙갚음할 것이다. 그나마 학교에 가는 것은 허락받았다. 대다수 소녀에게는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_259쪽, <6장 더러운 피, 월경> 중에서

     

    무루가난탐은 생리대를 갈고 몸을 씻을 곳으로 묘지 근처의 공동 우물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피하듯 그 우물을 피했다. 그러니 그곳이라면 생리대를 갈고 피가 밴 옷을 물에 씻어도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무루가난탐이 틀렸다. 그의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었고, 입길에 올랐다. 이 이상한 남정네가 여자처럼 생리대를 차고 옷에 밴 피를 씻어내네. 도대체 무슨 짓이래? 아이고, 남사스러워라! 웬 망신이야.

    이 남자는 혁신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그가 사는 마을뿐 아니라, 그가 사는 주, 나라, 그리고 세계가 그 일을 혁신으로 여겼다. 베 짜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무루가난탐은 14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작업장 조수로 일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런 그가 이제 생리남이 되고 있었다.

    _307쪽, <7장 지저분한 천, 생리대> 중에서

     

    왕립 런던 병원 주요 외상 센터. 비상 전화가 울린다. 응급 환자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악마의 전화가 울린다고 말한다. 전화를 받은 간호사가 전화를 끊자마자 알린다. “코드 레드. 오픈 체스트.” 순식간에 분위기가 바뀐다. 의료진이 같은 말을 외치며 상황을 전달하자, 응급실이 구호 소리로 꽉 찬다. 날마다 밤낮으로 수도 없이 재난과 참사를 마주하는 경험 많은 응급 전문의와 외상 전문의들인데도 지금 놀란 마음으로 서로 응급 상황을 알린다. “성인 외상 환자. 성인 여성. 오픈 체스트. 코드 레드. 8분.”

    _365쪽, <8장 출혈 환자를 살려다, 코드 레드> 중에서

     

    피는 우리 몸속에서 금처럼, 우주 먼지처럼 반짝인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소몰이꾼이다. 오늘날 우리가 유전자를 편집하고 줄기세포를 키우고 수혈로 삶을 바꾼다지만, 먼 훗날 우리를 되돌아본 사람들은 우리가 이룬 성취가 소의 날숨을 들이마시면 건강해진다는 믿음만큼이나 알량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약 400년 전 새뮤얼 피프스가 쓴 대로 “더 건강한 몸에서 빌린 피로 허약한 피를 고치는” 데 성공한 것은 이미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갈 것이다. 피로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는 아직 다 배우지 못했다. 그러니 앞으로 더 놀라운 일이 펼쳐질 것이다.

    _432쪽, <9장 피의 미래> 중에서


    • 의학, 과학, 역사, 종교, 문화,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피가 인간사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엮은 책이다.


      책의 제목과 서문을 맞이하며 다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피를 중심으로 한 책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의학 서적이라면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범 사회 문화까지 아우르는 논픽션이자 교양서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다.



      대부분의 글은 독립 개념이 종속 개념의 보완을 받는 형태로 서술되는 데 종속 개념이 주가 되어 독립 개념을 엮는 구성 방식이 매우 신선했다. 기존의 시선 방향과 프레임을 바꾸고 나니 그동안 깊이 있게 다루지 못했던 혹은 고민해 볼 생각조차 못했던 주제들이 쏟아졌는데 그런 점이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말미에 언급한 감사의 글에는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의 배경이 적혀 있다. 전작 “똥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진지하게”가 출간된 이후 생리를 주제로 책을 펴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피의 모든 면을 다루는 쪽으로 범위를 넓혔다고 밝히고 있다. 덕분에 이 책은 의학, 과학, 역사, 종교, 문화, 철학 측면을 다양하게 아우르는 넓은 독자층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제목이 다소 독특하다. 원제는 “Nine Pints”인데 여기서 파인트라는 단위는 영국 기준으로 약 568 밀리리터이기에 9파인트는 약 5,112 밀리리터 즉 약 5리터의 피로 환산할 수 있다. 따라서 번역서의 제목도 그렇게 결정된 듯 하다.


      이어지는 구성방식도 재미있다. 1장은 500밀리리터의 힘을 다루고 있는데 왜 제목과 다르게 1파인트의 피만 다루는지 궁금했다. 읽다보니 총 9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의 무게를 1파인트의 비중으로 측정한 듯 했다. 총 9개의 장이니 제목이 Nine Pints가 되는 것 같은데 내 추측이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또 하나의 추측으로는 몸속의 흐르는 피가 약 5리터에 달한다 하니 한 사람을 지탱하는 피의 양이 제목으로 선정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두가지 추측 모두 반영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논픽션의 책 치고는 구성부터 남다른 심오함을 지닌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은 어찌보면 불필요한 과정인 것 같지만 저자와 편집자의 생각을 엿보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1장에서 등장하는 500밀리리터의 힘은 대단하다. 이 단위는 대부분의 일반인이 1회 헌혈 시 추출되는 피의 양으로도 일반적이다. 몸속을 흐르는 피의 약 10%에 해당하는 상당량이다. 즉, 이장에서는 수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헌혈이라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세계 3초마다 누군가는 낯선 사람의 피를 받는다고 한다.


      해마다 1.1억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헌혈한다고 하니 헌혈이 얼마나 대규모로 이뤄지는지 알 수 있어 놀랐고 나의 헌혈 참여 행태에 부끄러움을 느끼에 하는 계기도 되었다. 때로는 헌혈이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는 설득보다도 이 책과 같이 헌혈의 위력과 현 주소를 담담하게 논픽션으로 전달하는 것이 더 나은 설득이 되는 것 같다. 첫 장부터 이 책은 이런 묘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헌혈 외에도 이 장에는 피에 대한 많은 유용한 정보가 담겨있다. 피 검사를 통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밝힐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생물학적 나이, 실제 나이, 파킨슨 병이나 암에 걸릴 가능성, 수술 시 섬망 증상이나 심장 기능의 이상 여부에 대한 예측도 가능하다고 한다.


      피가 만들어 지는 곳은 지라인줄 알았는데 비교적 최근 교육을 받고 과학에 관심이 있는 나도 피에 대해 이렇게 무지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피는 뼈안의 골수에서 만들어진다. 피는 산소와 영양분을 나르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상상 이상의 운반책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온기, 호르몬, 신체 기능, 에너지, 수면, 기분을 조절하는 신호까지 나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과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는데 커피콩에서 추출한 효소로 B형 혈액을 O형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O형은 늘 주기만 하는 혈액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 O형이 억울할 일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조금은 줄은 듯 하다.



      이 책이 도달하고자 하는 방향에는 철학적인 측면도 있다. 테세우스의 배는 유명한 철학 질문 중 하나인데 우리 몸의 세포는 7년에 한 번씩 교체된다고 한다. 이 철학적 명제와 관련하여 나 역시 다섯번째 몸으로 산다고 볼 수 있겠는데 이 몸이 과연 나인지 심도 있게 생각해 볼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무튼 1장은 피와 헌혈 및 기본적인 사회 문화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요약하고 있기에 2장부터의 시작되는 여행을 즐기기 위해 반드시 먼저 읽어두면 좋다. 너무 많은 정보들과 생각할 주제들이 담겨 있어 하나의 장을 읽는데도 하루가 소모되었다. 피에 관해 이렇게 많은 유용한 정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생각해 볼 거리가 많다는 점에도 놀랐다.



      1장이 피의 전반을 논하고 있다면 2장 부터는 굵직한 주제들을 하나씩 파고 든다. 2장에는 피와 관련된 의학적 측면에서 치료 목적으로 활용되는 자연의 치료사이자 흡혈 악마로 취급되는 거머리가 등장한다. 바이오팜이라는 회사에 견학 방문하며 보고 들은 것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거머리가 내뿜는 마취제와 항응혈제는 인간의 과학을 앞설 정도로 뛰어난 화학 물질이다.


      저자의 폭넓은 조사 덕분에 흥미로운 역사거리가 등장하는 것도 책이 가지는 매력 중 하나인데 중국 후한 시대 학자 왕충은 왕이 밥을 먹다 뜻하지 않게 거머리를 삼켰는데 덕분에 만성통증에서 해방되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한다. 고대 바빌론의 문헌부터 나폴레옹의 일화에 이르기까지 옛 선조들이 거머리를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활용했는지의 여정을 엿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거머리에 대한 인간의 배은망덕은 지구 환경을 보존하는 측면으로 이어져 사람이 거머리에게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피를 잘 뽑게 하기 위해 일부러 굶겨 치료에 이용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를 옮길 수 있는 능력 때문에 할 일이 끝나면 죽음을 맞는 거머리는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 것인가?


      혈액 응고, 소화, 결합 조직, 질환, 통증, 효소 억제, 항염증 등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는 거머리를 이렇게 이용만하고 버리는 우리의 자세가 당연시 되는 세상이 늘 서럽다. 어쨌든 읽는 내내 논픽션이 픽션을 창출하게 만드는 책의 원동력은 정말 대단한 필력이자 장점이다.



      3장에는 옥스퍼드 서머빌 출신의 재닛을 중심으로 발전된 헌혈과 관련된 기술의 발전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어찌보면 1장의 일부에 대한 확장판이라 볼 수 있겠는데 이 과정을 조사하는 저자의 탐구 절차나 과학자들의 인사이트를 얻는데 있어 배울만한 과정이 담겨 있어 가치있다는 생각을 했다.



      4장은 피를 타고 퍼지는 강력한 바이러스 HIV를 다룬다. HIV의 바이러스의 생김새부터 생김새에 종속되는 기능이 인간의 면역체계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매우 상세히 알 수 있다. 전 세계 3,750만명이나 감염되어있다는 사실과 케이프타운과 같은 후진국의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어디가나 돈으로 성을 매수하는 저질스러운 인간들을 어찌해야 할지? 책에서는 대표적으로 축복자라고 불리는 계층이 등장한다.



      5장은 피를 구성하는 물질 중 가장 낮은 무게를 가진 혈장을 중심으로 혈우병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 혈장의 응고인자 8번이나 정맥내 면력 글로불린이 무엇인지 배울 기회도 주어진다. 또 혈우병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그리고 영국의 유명한 여왕 엘리자베스 가문에 근친 결혼으로 전해지던 병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풍선에 물이 한없이 들어가는데 터지지 않는 느낌. 피는 남는 공간이 없을 때까지 계속 밀려들어 심지어 신경을 누른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출산의 고통을 능가하는 몇 안되는 통증이 결석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경험자가 이와 맞먹는 고통이라 판단할 정도이니 그 극심한 고통은 겪지 못한 이들이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6~7장은 여성의 월경을 다룬다. 월경이 사회 문화적으로 얼마나 더러운 피로 취급 받았는지, 생리대 또한 얼마나 지저분한 천으로 여겨졌는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 후진국의 행태까지 살펴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교양인이 출산을 위한 신성한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심각성을 알지 못했는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 할 월경 시기에 분리된 창고로 쫓겨나 맨밥만 먹어야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참담하기 그지 없었다.


      또 과학적 측면으로는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많았다. 태아가 임신부에게는 침입자이자 기생충으로 여겨지기에 모체와 태아가 충돌하는 보기 드문 종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기니 보게오섬이 월경하는 남자들의 섬으로 일컬어지며 그 섬에서 벌어지는 남자들의 추태는 혐오스럽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 생리를 부러워하거나 혹은 두려워 했던 남자들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간 알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8장은 첫 장면부터 경이롭다. “코드 레드. 오픈 체스트”. 출혈과 혈압 저하가 심각한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개흉 후 심장을 마사지하는 광경을 서술하는데 환자의 몸통에서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낯선 분홍색 덩어리 즉, 폐를 보는 장면은 끔찍함과 동시에 생명을 살리기 위한 행위 앞에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느끼게 해준 장면이기도 했다. 이 장에서는 출혈과 심장을 중심으로 긴박한 상황에 처한 의료진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마지막 9장은 피의 미래를 다룬다. 명나라 황제 가정제가 젊은 여성의 월경혈로 만든 묘약을 즐겨 마셨다는 사실 때문에 후궁들이 암살 계획을 짜기까지 했다는 피로 무엇인가를 해결하고자한 기가막힌 역사적 선례들이 몇가지 등장한다. 이는 건강한 몸에서 빌린 피로 허약한 피를 고치는 헌혈과 관련된 피 과학의 현 주소까지 이어진다. 피를 향한 인간들의 욕망이 무엇이며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참고 문헌을 제외하고도 400p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읽는 내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팩트를 읽기도 했고 철학의 영역까지 이어지는 사고로 책을 읽는 속도가 지연되기도 했다. 피를 소재로 다루는 책이 독자의 머리속에 이렇게도 다양한 모습의 화학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여정이었다.


      모든 것을 리뷰에 언급할 수 없어 안타깝다. 떠오르는 인상적인 부분을 위주로 각 장의 내용을 요약해 보았는데 이 리뷰를 읽는 분들이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만한 리뷰인지는 자신할 수가 없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흥미로운 주제들로 가득차 있다.


      때로는 미처 몰랐던 호기심이, 때로는 가슴 통탄할 사회적 배경이, 언제 어디에서나 세상을 검게 물들이는 인간의 욕심이 독자로 하여금 한 번 펼친 이 책을 쉽사리 덮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유용한 지식을 습득하거나 깨달음을 차치하고서라도 재미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써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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