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어렵던 과학이 문학, 철학, 역사로 이해될 줄이야!
이성적 과학에 인문학적 감성을 채색하다
《과학의 위로》는 오랫동안 인문학 작가로 활동한 이강룡 저자가 마흔 무렵 스스로 과학 공부를 하며 느낀 과학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을 인문학적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또 과학의 물리 법칙을 우리 일상에 적용해보는 철학적 시선도 제공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딱딱한 과학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읽다 보면 이것이 과학 책인지, 인문학 책인지, 역사나 철학 책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때론 감성적인 에세이로 둔갑해 저절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 어렵기만 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시간과 공간의 절대성을 다룬 칸트의 철학 체계와 비교되는 순간,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신축성 있는 고무줄”이라는 상대성 원리가 바로 이해되는가 하면, ‘유전자-DNA-염색체-게놈’을 카세트테이프에 비유하는 글에서는 과거의 추억이 생각나는 동시에 생명학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저자는 친구가 세상을 떠나자 더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는 고사성어 ‘백아절현(伯牙絶絃)’ 이야기로 소리와 주파수를 설명하고, 그리스 철학자 제논의 역설을 통해 무한급수의 개념을 재밌게 풀어준다. 또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을 다룰 때는 그리스 뮤즈의 신화까지 곁들인다.
어디 그뿐인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빛의 속성을 설명하는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하며, 미우라 시온의 소설 《배를 엮다》의 대사 한 장면은 과학의 표준과 단위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재밌는 비유로 쓰인다.
《과학의 위로》는 숫자와 기호, 수식부터 알아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과학 개념이 인문학적 지식과 문학적 비유, 그리고 철학적 지혜를 만나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우리가 다시 과학에 주목해야 이유는
세상과 삶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다
음악을 전혀 듣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지만, 음악을 들으면 인생을 더 즐겁고 멋지게 향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몰라도 세상살이에 별로 지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은 과학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 있기에 과학을 알면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우리의 사고도 더욱 풍요로워진다.
작가의 말처럼, 감마선이란 단어를 보았을 때 체르노빌의 바이오 로봇을 떠올리면서 잠시 숙연한 마음을 갖는 것, 주유소에서 무연휘발유를 넣다가 납 성분을 배출하는 유연휘발유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고 인류를 납 중독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준 물리학자 클레어 패터슨을 떠올리며 잠시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 이런 것이 어른의 과학일 것이다. 또한 1905년이라는 연도에서 을사조약을 떠올리는 동시에, 아인슈타인이 획기적인 논문들을 쏟아낸 기적의 해라는 사실을 함께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 인생에서 1905년은 더욱 다양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천체물리학을 공부하면 우주의 광대함에 비추어 인간이 보잘것없는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 이론을 공부하다 보면 동시성이 없다는 과학 지식을 알게 되는 한편, 지금이 아니면 사라지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문제풀이 과학이 아니라 이 세상에 과학이 존재하는 가치, 과학이 발견한 인류의 가능성, 과학이 말하는 삶의 의미 등을 살펴보고 사색할 수 있다.
자, 앞으로는 살면서 알쏭달쏭하고 고통스럽고 난해한 문제를 만났을 때 답을 미지수로 놓고 가능한 방정식을 찾아보자. 《과학의 위로》를 읽는 시간은 이 책의 부제처럼 “답답한 인생의 방정식이 선명히 풀리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추천사
“솔직히 과학은 어렵고 재미없다. 그래서 과학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려면 정작 과학을 빼야 할 때가 많다. 내용의 깊이와 넓이는 재미와는 정반대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학의 위로》는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정말 재밌다. 동시에 과학을 정확히 담고 있다. 반드시 읽어보라.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고, 과학을 통해 인생의 미지수가 풀린다는 깨달음도 얻게 될 것이다.”
- 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지식은 당장 쓸모가 없어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 과학 지식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 좋을 만한 과학 이야기를 누구나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준다. 선배에게 듣는 세상 이야기, 직장 동료와 나누는 사는 이야기 같은 느낌으로 과학에 얽힌 사연을 전달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가십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인데, 오늘은 그 대신에 차 한잔과 함께 과학 이야기를 나누어본다면 거기에 어울리기에는 이 책 내용만 한 것이 없을 것이다.”
- 곽재식(작가)
▶ 책 속으로
시인 단테가 지은 서사시 《신곡》은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제자 단테가 지옥, 연옥, 천국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인생의 반고비에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이 글을 쓸 때 단테는 30대 중반이었는데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인생의 반고비가 맞다. 요새 나이로는 마흔 정도가 아닐까 한다. 마흔쯤 되면 누구나 인생의 반고비를 살았다는 생각이 들 텐데, 그동안 살아온 시절을 돌이켜보면 세상살이가 참으로 복잡다단하다는 느낌도 들 것이다.
_29쪽, <1장 빛과 입자> 중에서
살다 보면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 결국 최적의 경로였던 경우가 많다. 삶의 최적 경로는 직선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언제나 곧은길로 앞으로만 나아가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돌아보면 삶의 여정은 구불구불한 곡선들로 가득 차 있다. 등산할 때 보면, 직선거리이긴 하지만 아주 올라가기 힘들고 어려운 길이 있고 직선거리는 아니지만 조금 돌아가면 더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여러분은 둘 중에 어느 길로 가겠는가. 빛이라면 더 빨리 갈 수 있는 우회 경로를 택할 것이다. 돌아가는 길을 택해야 돌아가지 않게 된다.
_35쪽, <1장 빛과 입자> 중에서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지구에 사는 우리의 눈까지 오려면 8분 정도 걸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나 실시간의 태양이 아닌 8분 전의 태양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책을 보는 것도 사랑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모두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SF 영화의 한 장면이라 치고, 만일 태양이 폭발하거나 사라진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불과 8분밖에 안 된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까마득한 과거의 모습들이다. 현재 그 별이 사라졌다 해도 그 별은 당분간 밤하늘에 여전히 빛날 것이다. 과거에 출발한 빛이 지구까지 오는 여정의 시간만큼 유예되는 것이다. 따라서 밤하늘은 과거를 보여주는 마법 같은 브라우저이자 타임머신이다.
_47~48쪽, <1장 빛과 입자> 중에서
좋은 질문은 더 나은 지식을 이끌어내는 힘을 지닌 듯하다. 질문을 해보자. 물체는 정지한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일까, 아니면 계속 움직이는 상태가 자연스러운 것일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체는 움직이다가 결국 멈추게 되므로 정지 상태가 물체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은 정지한 상태이므로, 즉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 있으므로 주변 하늘이 우리를 기준으로 빙글빙글 돈다고 여겼을 것이다. 갈릴레이는 움직이는 물체에 따로 멈추는 힘을 가하지 않으면 움직이던 물체는 영원히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의 배후를 생각했던 것이다. 인위적인 힘을 가하지 않으면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우므로 지구 역시 일정하게 계속 움직이고 있는 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멈추는가?’ 하고 물었다면 갈릴레이는 ‘왜 안 멈추는가?’ 하고 물었기에 올바른 원리를 본 것이다.
_80~81쪽, <2장 시간과 공간> 중에서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아주 오래전 은하계 저편에)”라는 스타워즈 오프닝으로도 해결이 안 되는 아득히 먼 곳, 13억 광년 떨어진 우주 공간에서 두 블랙홀이 충돌했다. 13억 광년이란 빛의 속력으로 13억 년을 가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비교하자면 1977년도에 발사한 보이저호가 45년 동안 날아간 거리는 빛의 속력으로 하루면 갈 수 있다. 여기에 365배를 해야 1광년 거리가 된다. 비교가 잘 안 된다. 하여튼 광년 단위로 떨어진 곳은 아주아주아주 멀다. 저 아득히 먼 어느 은하에서 충돌한 두 블랙홀로 인해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고, 충격이 너무나 강력했기에 그 파동이 사방팔방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지구에도 그 파동이 마침내 전해졌다. 중력파라 불리는 그 파동을 2015년에 지구의 과학자들이 관측했다. 이것이 현대 과학 기술이 도달한 경지로서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그 바탕에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있다. “무거운 물체는 시공간을 출렁이게 한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은가.
_104~105쪽, <2장 시간과 공간> 중에서
기하학자들은 일반인이 상상하기도 힘든 수천 차원 이상의 고차원을 다루는데, 잘 따져보지 않아서 그렇지 실은 우리도 고차원 정보를 다루며 고차원 세계에 살고 있다. 마흔 살 정도 되는 사람들은 적어도 몇십 차원 정도 되는 세계에 산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자, 어떤 여인의 남편이며, 어떤 사내아이의 아빠이고, 장인어른의 큰사위이며, 조카들의 삼촌/이모부/고모부이고, 작가이자 강사이며, 어떤 이의 친구로서, 남양주시에 사는 40대 후반의 한국 남자다. 대략 14가지 조건이 나왔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 나라는 인간을 제대로 규정하려면 40종류 정보, 즉 적어도 40차원 이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_138쪽, <3장 과학과 수학> 중에서
내 아들이 아가였을 때 나랑 같이 다니면 이웃 사람들이 내 얼굴과 아들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한마디씩 했다. “아빠랑 똑같네.” 닮은 데야 있겠지만 똑같은 건 아닐 텐데 왜 똑같다고 말하는 걸까. 사람들이 말하는 똑같다는 말은 외모가 복사기로 찍은 듯 일치한다는 게 아니라, 뭔가 본질적인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기하학자가 찾는 것이다. 붕어빵들보다는 그 붕어빵 틀을 찾고자 하고, 틀보다는 그 설계도를 찾고자 한다.
_152~153쪽, <3장 과학과 수학> 중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미분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기울기가 없으니 미분하면 0이 될 텐데, 자식이 미운 짓을 하든 고운 짓을 하든 어머니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가족과 연락을 끊고 잠수를 타는 짓은 하면 안 된다. 힘들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얼른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 내 삶의 모습이 어떻든, 적어도 가족만큼은 그걸 예측 가능해야 하지 않겠는가.
_166쪽, <3장 과학과 수학> 중에서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다. 지구도 마찬가지다. 보통 북쪽을 위라고 여기기 쉬운 것은 그렇게 지도를 그려온 관습 때문이다. 근대 시대의 패권을 차지했던 나라들이 북반구에 대부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 달력으로 보면 마지막 날의 마지막 1초가 근대 과학의 역사인데, 마지막 14초로 확장하면 우리 인류의 역사가 된다. 그 14초 안에 우리 인류의 모든 희로애락, 그리고 전쟁과 평화가 담겨 있다. 천문학 지식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주에는 위아래가 없으니 우주의 일부인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_198~199쪽, <4장 우주와 인간> 중에서
복제도 사람의 일이라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하지만) 실수가 생긴다. 10억 회 중에 한 번꼴로 불량품이 생기는데 이렇게 잘못 복제된 세포가 암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반면에 이렇게 원래 설계도에 맞지 않는 불량품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진화의 실마리가 된다. 기존 모습과 완벽히 일치한다면 진화도 없기 때문이다. 항구에 잘 정박된 배는 안전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목적은 아니다. 파도가 치는 바다로 나아가 위험에 맞서며 움직이고 일을 해야 뭔가를 해낼 수 있다. 고정된 원래 상태 그대로에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_224~225쪽, <4장 우주와 인간> 중에서
과학 공부는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른다고 말하기 위해서 하는 거다. 확실한 것이 결국 아무것도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과학 공부다. 학생이 모른다고 하는 말과 박사가 모른다고 하는 말은 맥락이 전혀 다르다. 학생의 모름은 호기심과 궁금함의 모름이지만, 박사의 모름은 인류가 아직 밝히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가리키는 모름이기 때문이다. “그건 아빠도 모르겠어.” 그 말 한마디를 아들에게 건네기 위해 인생의 여러 가지를 경험한다. 그 숱한 것을 두루 경험했기에 모르겠다는 말을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보다 어린 세대에게 모른다는 말 한마디를 잘 하려고 먼 길을 돌아오는 게 인생 공부다.
_256쪽, <에필로그> 중에서